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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단순한 철학서가 아닙니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통찰하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프롬은 인간 삶의 방식이 '소유(having)' 중심일 때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왜곡된다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처럼 고도 경쟁과 물질 중심 문화가 강한 환경에서는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얼마나 '갖기 위한 삶'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떤 삶의 질적 저하를 겪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프롬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소유 중심 사회의 민낯: 경쟁과 불안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고도 경쟁 사회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 준비를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하며,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는 승진, 연봉, 주택 구매 등 끊임없는 경쟁이 이어집니다. 이러한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프롬이 경고한 ‘소유의 양식’이 바로 이와 같은 방식입니다. 소유 중심의 인간은 끊임없이 외부의 조건으로 자신을 정의합니다. 어떤 차를 몰고 있는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 자녀는 어느 학교를 다니는가 등의 질문이 그 사람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죠. 한국 사회는 이런 평가 잣대가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끊임없는 불안과 비교의 굴레에 갇히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경쟁 속에서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이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은 줄어들고, 공허함은 더 커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프롬은 이를 ‘인간 소외’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잊고,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현대인의 비극이라는 것이죠. 한국 사회의 지나친 성과 중심 문화는 인간을 수단화하며, 존재의 가치를 흐리게 만듭니다. 이는 결국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갖고 있는가’로 자신을 규정하게 만드는 소유적 삶의 전형입니다.
관계 속에서의 소유: 가족과 결혼의 오해
프롬은 특히 사랑과 관계 속에서 소유적 삶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는 사랑이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유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조차도 ‘갖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내 사람", "내 아내", "내 자식"이라는 표현은 친밀함을 나타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유욕이 감춰진 언어일 수 있습니다. 결혼 관계에서는 이러한 소유 욕구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배우자를 하나의 ‘재산’처럼 생각하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자유를 존중하기보다는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나타나는 것이죠. 이는 결혼 초반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빠르게 현실적인 갈등과 억압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전통적인 가족 문화 속에서 이러한 소유 중심적 사고가 더욱 강화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내 뜻대로 이끌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아실현보다 가족의 유지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결국 사랑이 관계의 중심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로 변질되도록 만듭니다. 프롬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요. 사랑이란 두 존재가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행위입니다. 소유적 사랑은 필연적으로 지루함, 갈등, 통제의 문제를 낳고, 존재적 사랑은 존중, 개성, 자유를 전제로 하기에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듭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이 가족 및 결혼의 왜곡된 개념은 바로 소유적 관계의 전형입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선 관계 속에서 ‘내 것’이라는 집착을 내려놓고, 타인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프롬이 말하는 ‘존재의 양식’이 사랑 속에서 구현되는 방법입니다.
존재 중심 삶으로의 전환 가능성
프롬은 단순히 소유적 삶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 중심의 삶을 실현할 수 있는지도 함께 제안합니다. 존재 중심의 삶이란 단지 물질적인 것을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타인을 이해하며, 현재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를 말합니다. 한국 사회는 존재 중심의 삶을 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사회 전반이 성과와 효율, 스펙과 스피드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미니멀리즘’ 등의 키워드는 바로 이러한 전환 욕구의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갖는 것'보다 '사는 것'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존재 중심의 삶은 거창한 철학적 도전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공감하는 것, 자연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는 것, 나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 모두가 존재 중심 삶의 실천입니다. 자신을 외부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살아가려는 태도야말로 프롬이 말한 존재의 본질입니다. 더 나아가 존재 중심의 삶은 공동체적 가치로도 확장됩니다. 개인만의 실존적 고민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연대, 공동체적 행복까지 아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쟁과 분열의 구조 속에 있지만, 이런 전환이 더 널리 퍼진다면 진정한 의미의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롬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소유하며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존재하기 위해 내려놓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 전체를 아우르는 본질적인 물음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질문 앞에 진지하게 서 있어야 할 때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단지 철학적 명상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소유하려 하고, 스스로를 무엇으로 채우려 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관계와 행복은 존재 중심의 삶에서 피어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소유 대신 존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롬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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