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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단순한 여행담이 아니라, 인간 존재, 타인과의 관계, 삶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성찰입니다. 총 9편의 산문을 통해 그는 물리적 이동으로서의 여행을 넘어, 자기 자신을 잊고 재발견하는 과정으로서의 여행을 조명합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왜 떠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여행은 현실로부터의 ‘추방’, 그리고 감각의 회복
김영하는 서문과 1장에서 여행은 현실로부터의 추방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일상의 고정된 자아를 벗어나며, 그동안 무뎌졌던 감각을 되찾는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추방과 멀미>에서는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오직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여행의 순간을 그려냅니다. 그에게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이탈하는 과정이며, 그 이탈을 통해 우리는 새로움을 마주하고 감정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직접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짧은 에피소드와 정제된 언어로 감정의 층을 건드립니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 길을 잃고,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과거 여행을 되새기게 됩니다. 여행은 결국 ‘내 안의 나’를 마주 보는 시간입니다.
타인의 환대, 신뢰, 그리고 ‘자유’의 경험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테마는 ‘타인의 환대’입니다. 김영하는 여행을 통해 익명성 속에서 느끼는 자유를 강조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의 친절함을 통해 우리는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됩니다. 작가는 여행지의 신뢰 문화에 놀라움을 느낍니다. 음식점 계산 방식, 길을 물었을 때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태도, 혼자 있는 여행자를 배려하는 시선 등. 이러한 경험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보다 열린 마음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우리는 ‘다른 문화의 삶도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삶을 다시 점검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죠.
여행은 나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한 것’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진짜 나’를 찾는다고 말하지만, 김영하는 <여행은 나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한 것이다>라고 단언합니다. 여행은 결국 우리 삶의 비일상적인 휴지기이자,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이자 회복의 장치라는 것입니다. 그는 여행 중의 그 ‘멍한 순간’에 삶의 감정들이 차오른다고 말하며, 그 멍함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를 다그치던 시간에서 빠져나와, 무게를 덜어낸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즉, 여행은 자신을 비워내는 시간이자, 채우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리뷰: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 집을 더 사랑하기 위해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저만의 여행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저는 1년에 한두 번 여행을 갑니다. 여행은 늘 기대되지만, 막상 떠나보면 고생이 먼저예요.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더 그렇죠. 숙소 적응, 음식, 체력… 다 쉽지 않아요. 그런데도 저는 꼭 떠납니다. 왜냐하면, 그 고생 끝에 돌아온 ‘집’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거든요. 집은 언제나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지만, 너무 익숙해서 그 고마움을 자주 잊고 삽니다. 여행은 저를 억지로 그 익숙함에서 떼어놓습니다. 그렇게 불편함과 고단함을 경험하고 돌아와서, 저는 다시 ‘집’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게 됩니다. 물론 여행에는 낯선 장소에 대한 호기심과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죠. 하지만 결국엔, “집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게 아마, 저만의 ‘여행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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